후지모토 히로시 (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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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지모토 히로시(1963년)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 해설가이다. 1982년부터 1998년까지 선수로 활동하며 난카이 호크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뛰었고, 통산 110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35, 715안타, 105홈런, 419타점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해설가와 지도자로 활동하며, 2021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으로 취임하여 2022년 팀을 리그 2위로 이끌었다. 2023년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2024년부터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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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토 히로시 (1963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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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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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63년 11월 8일 |
출생지 | 오사카부 센보쿠군 다다오카정 |
신장 | 182cm |
체중 | 100kg |
포지션 | 내야수 / 코치 / 감독 |
투구 | 우 |
타석 | 우 |
프로 입단 | 1981년 |
드래프트 순위 | 드래프트 4위 |
첫 출장 | 1985년 4월 14일 |
마지막 출장 | 1998년 7월 18일 |
선수 경력 | |
소속 팀 | 난카이 호크스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82–1998)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8) |
감독 및 코치 경력 | |
소속 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1–2023) |
NPB 통산 성적 (1998년 기준) | |
타율 | 0.235 |
안타 | 715 |
홈런 | 105 |
타점 | 419 |
도루 | 10 |
기타 정보 | |
고등학교 | 덴리 고등학교 |
NPB 데뷔 | 1985년 4월 14일, 난카이 호크스 |
NPB 마지막 경기 | 1998년 7월 18일, 오릭스 블루웨이브 |
전 소속팀 특별 고문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23년) |
2. 선수 경력
프로 선수 시절 난카이 호크스·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1982년 ~ 1998년)와 오릭스 블루웨이브(1998년)에서 활동했다. 1981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난카이 호크스에 지명되었으며[4], 1990년 7월 7일에는 닛폰햄 파이터스를 상대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는 등 활약했다.[4] 1998년 시즌 초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트레이드되었고, 같은 해 현역에서 은퇴했다.[4]
프로 통산 110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35, 안타 715개, 홈런 105개, 타점 419개를 기록했다. 그의 현역 시절 응원가는 오랫동안 팬들에게 기억되어, 2022년 시즌까지도 호크스의 득점 찬스 테마로 사용되었다.[5]
2. 1. 프로 입단 전
덴리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980년, 2학년 여름에 열린 제62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4번 타자 겸 3루수로 출전했다.[3] 당시 같은 2학년이었던 투수 가와모토 가즈히로, 고야마 마사오의 호투에 힘입어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에이스 아이코 타케시 등을 보유한 요코하마고에게 예상 밖의 역전패를 당했다.[11] 그 후 2학년 가을에 팀 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1년간 대외 공식 경기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아, 3학년 때의 고시엔 진출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2. 2. 난카이 호크스·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시절
1981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4순위로 난카이 호크스에 지명되어[12], 1982년에 입단했다.[4] 유도 유단자(검은 띠[14])이기도 하며[13], 체격이 좋아 몬타 히로미쓰 이후 일본인 거포 부재와 득점력 부족에 시달리던 1980년대 난카이 호크스에서는 기시카와 가쓰야와 함께 장래의 4번 타자 후보로 기대를 모았다.1988년에는 1군에 정착하여 주로 3루수로 88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난카이 시절에는 주로 7, 8번 하위 타순을 맡았으나, 구단이 난카이 전기 철도에서 다이에로 매각되고 후쿠오카현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후에는 클린업 타순을 맡게 되었다.
1990년 7월 7일 닛폰햄 파이터스전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4] 1992년에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하여 타율 .253(리그 28위)을 기록했다. 파워 히터 이미지가 있었지만 연간 최다 홈런은 1992년의 20개로 중거리 타자에 가까웠다. 본래 상황에 따른 밀어치기도 가능한 선수였으나, 팀의 만성적인 득점력 부족과 다이에 호크스 감독 타부치 고이치의 지도 영향으로 장타를 노리는 큰 스윙이 많아지면서 타율은 .250 전후에 머물렀다. 하지만 타율에 비해 출루율은 매우 높아, 1992년 출루율은 그 해 수위타자였던 팀 동료 사사키 마코토를 상회할 정도였다.
1994년에는 1루수 브라이언 트랙슬러, 3루수 마쓰나가 히로미의 영입으로 주전 자리를 잃었다. 당시 타격 코치였던 오타 다쿠지는 후지모토의 타격 기술을 높이 평가하여, 타격 부진이던 2루수 유가미야 히로시 대신 후지모토를 기용할 것을 감독에게 건의했다. 2루수로 기용된 후지모토는 수비에서도 활약했으며, 같은 콧수염을 기른 트랙슬러와의 1, 2루 호흡은 당시 명물로 꼽혔다.
1995년 이시게 히로미치가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이적해오면서 다시 주전 경쟁에 놓였으나, 오타 코치의 건의로 세이부와의 개막전(세이부 구장)에 이시게 대신 1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9회 초 시오자키 테츠야에게 홈런을 기록했다. 그 해 승부처에서 강한 타격을 보여 득점권 타율 .391로 퍼시픽 리그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1996년 이후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밀려 출장 기회가 줄고 성적도 하락했으며, 1997년에는 1군 정착 후 처음으로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후 1998년 시즌 개막 직후 트레이드되어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했다.[4]
현역 시절 그의 응원가는 2022년 시즌까지도 호크스의 득점 찬스 테마로 사용되었다.[5]
2. 3.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1998년 시즌 초 트레이드를 통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서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했다.[4] 같은 해 4월 28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 출전했지만, 이적 직후였기 때문에 유니폼 제작이 늦어져 과거 오릭스에 재적했던 타이 게이니의 유니폼을 빌려 입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적 후에도 타격 부진을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1998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4]후지모토는 프로 통산 110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35, 안타 715개, 홈런 105개, 타점 419개를 기록했다.
3. 지도자 경력
현역 은퇴 후 1999년부터 2010년까지 TVQ 규슈 방송, J SPORTS 야구 해설자, 니시닛폰 스포츠 야구 평론가로 활동했다.[15] 해설자 활동과 병행하여 2010년까지 후쿠오카시 주오구에서 선술집 "후지모토테이"를 운영하기도 했다.[16]
2011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2군 타격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17] 이후 1군 타격 코치, 3군 감독, 2군 감독을 차례로 역임했다.[4][22]
2021년 10월 29일, 구도 기미야스의 후임으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1군 감독으로 선임되었다.[23][24] 2023년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며, 후임으로는 고쿠보 히로키가 선임되었다.[8] 2024년부터는 다시 TVQ 규슈 방송과 TV 도쿄의 야구 해설자로 활동한다.
'''지도자 경력 요약'''
연도 | 소속 | 직책 |
---|---|---|
2011년 ~ 2012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군 타격 코치 |
2013년 ~ 2014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1군 타격 코치[18] |
2015년 ~ 2016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군 타격 코치 |
2017년 ~ 2018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1군 타격 코치[19] |
2019년 ~ 2020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3군 감독 |
2021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군 감독[22] |
2022년 ~ 2023년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1군 감독[4] |
3. 1. 지도 스타일
2011년부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타격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1년[17], 2012년, 2015년, 2016년에는 2군 타격 코치를, 2013년[18], 2014년, 2017년[19], 2018년에는 1군 타격 코치를 담당했다. 코치 시절 야나기타 유키[20], 나카무라 아키라, 구리하라 료야 등의 선수를 육성하는 데 기여했다.[21] 이후 2019년과 2020년에는 3군 감독, 2021년에는 2군 감독[22]을 역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다.2021년 10월 29일, 구도 기미야스의 후임으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1군 감독으로 선임되었다.[23][24] 이는 호크스 구단 출신 선수가 감독이 된 사례로, 비록 현역 말년에 다른 팀으로 이적한 경력이 있어 완전한 프랜차이즈 스타는 아니지만, 1989년까지 팀을 이끌었던 스기우라 타다시 이후 33년 만의 일이었다.
감독 부임 첫 해인 2022년 시즌 초반, 팀은 개막 8연승을 기록했다. 이는 구단 역사상 1955년 이후 67년 만의 개막 최다 연승 기록이자, 요나미네 오사무(주니치, 1972년)와 가지모토 타카오(한큐, 1979년)가 보유하고 있던 '''신인 감독의 개막 연승 기록'''(6연승)을 경신한 일본 프로 야구 신기록이었다.[25] 비록 시즌 우승은 놓쳤지만, 팀은 리그 2위를 기록했다.
후지모토의 선수 기용 방식은 좌우 타자 기용에 편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평가가 있으며, 본인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26]
2023년 시즌에는 개막 5연승을 거두며 좋은 출발을 보였고, 7월 6일까지 리그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팀은 구단 역사상 54년 만의 12연패라는 깊은 부진에 빠지며 3위로 추락했다.[27] 이후 롯데, 라쿠텐과 A클래스(상위권) 진입 경쟁을 벌였으나, 최종적으로 선두 오릭스에 15.5경기 차 뒤진 리그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포스트시즌인 클라이맥스 시리즈(CS)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리그 2위 지바 롯데 마린스와 맞붙었다. 1승 1패로 맞선 3차전에서 연장 10회 초 3점을 앞서며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이어진 10회 말 수비에서 구원 투수진이 무너지며 역전 끝내기 패배를 당했고, 시리즈 탈락이 확정되었다. 이 경기 직후, 소프트뱅크 구단은 후지모토 감독이 해당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고 공식 발표했다.[28]
4. 선수로서의 특징
1988년 1군에 정착하여 주로 3루수로 활약했으며, 1992년에는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했다(리그 28위, 타율 .253).[12] 난카이 시절에는 주로 7, 8번 하위 타순을 맡았으나, 구단이 다이에로 매각되고 후쿠오카현으로 이전한 후에는 클린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프로 선수로는 드물게 유도 유단자(검은 띠)로[13][14], 체격이 좋아 몬타 히로미쓰의 뒤를 이을 일본인 거포로 기대를 모았다. 기시카와 가쓰야와 함께 1980년대 난카이 호크스의 미래 4번 타자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연간 최다 홈런이 1992년의 20개에 그쳐 중거리 타자에 가까웠다. 본래 상황에 맞춰 밀어치는 타격 기술도 갖추고 있었지만, 팀의 만성적인 득점력 부족과 다이에 호크스 2년차 감독 타부치 고이치의 지도 영향으로 장타를 노리는 큰 스윙이 많아지면서 타율은 .250 전후에 머물렀다. 반면 출루율은 타율에 비해 매우 높아, 1992년에는 타율 28위였음에도 출루율은 그 해 수위 타자였던 팀 동료 사사키 마코토를 훨씬 웃돌았다. 1990년 7월 7일 니혼햄 파이터스전에서는 사이클 안타를 달성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1루수로 외국인 선수 브라이언 트랙슬러, 3루수로 마쓰나가 히로미가 영입되면서 주전 자리를 잃었다. 처음에는 벤치 역할에 만족했으나, 당시 타격 코치 오타 다쿠지가 후지모토의 타격 기술을 높이 평가하여 타격 부진이던 2루수 유가미야 히로시 대신 기용할 것을 감독에게 건의했다. 2루수로 출전하며 분투했고, 수비에서도 우려와 달리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당시 함께 콧수염을 기르고 있던 트랙슬러와의 1, 2루 수비는 그 해의 명물로 꼽혔다. 이듬해 1995년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이시게 히로미치가 이적해오자 다시 주전 경쟁에 놓였지만, 또다시 오타 코치의 건의로 세이부와의 개막전(세이부 구장)에서 이시게 대신 1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9회 초 시오자키 데쓰야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했다. 그 후에도 승부처에서 강한 타격을 선보이며 그 해 득점권 타율 .391로 퍼시픽 리그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본인의 성적 부진으로 1997년에는 1군 정착 후 처음으로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 승부 근성과 높은 출루율이 강점인 중거리 타자로 평가받는다[29][30]。
- 다이에 호크스로 바뀐 1989년부터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눈이 나빠진 할아버지가 TV 중계에서 자신과 기시카와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자,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한다[31][32]。 이 턱수염은 은퇴 후에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 우타자로 이름을 알린 오미치 노리요시는 현역 시절 후지모토의 타격을 참고하여 자신의 타격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 그의 응원가("여기까지 날려라, 홈런")는 후지모토 은퇴 후에도 와카이 모토야스 등 좌타 강타자들의 찬스 상황 응원가로 종종 사용되고 있다[33]。 이 응원가는 데이비드 호스테틀러(1986년~1987년 재적)의 응원가를 이어받은 것이기도 하다.
- 전 동료 투수 시모야나기 쓰요시는 후지모토의 성격에 대해 "다이에 시절 정말 신세를 많이 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34], 수비에 대해서는 자신의 YouTube 채널에서 "최악의 2루수"라고 혹평하며 엉성한 플레이를 지적하기도 했다[35]。
- 오릭스 이적 후, 당시 한신 타이거스 소속이던 신조 쓰요시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후지모토는 "항상 나가는 시간이 같았는데, 내가 나갈 때까지 기다려주곤 했다. 예의 바른 아이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36]。
5. 개인 기록
1981년 11월 25일, 1981년 드래프트에서 난카이 호크스에 지명되었다.[4] 선수 시절 주요 기록으로는 1990년 7월 7일 닛폰햄 파이터스를 상대로 달성한 사이클링 히트가 있다.[4] 1998년 시즌 초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트레이드되었으며, 그 해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4]
현역 시절 사용되던 그의 응원가는 2022년 시즌까지도 호크스의 득점 찬스 테마곡으로 사용되었다.[5]
5. 1.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 1985년 4월 14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오사카 스타디움), 7번·3루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첫 홈런·첫 타점''' : 1985년 5월 2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5차전(오사카 스타디움), 4회말에 이마이 유타로로부터 역전 결승 2점 홈런
- '''사이클링 히트''' : 1990년 7월 7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11차전(하마마츠 구장) (역대 42번째)
- '''100홈런''' : 1996년 4월 16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3차전(기타큐슈 시민 구장), 5회말에 니시자키 유키히로로부터 솔로 홈런 (역대 185번째)
- '''1000경기 출장''' : 1996년 7월 27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17차전(그린 스타디움 고베), 8회초에 호시 히로시의 대타로 출장 (역대 333번째)
5. 2. 기록 달성 경력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1985년 4월 14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오사카 스타디움), 7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첫 홈런・첫 타점: 1985년 5월 2일, 대 한큐 브레이브스 5차전(오사카 스타디움), 4회말에 이마이 유타로로부터 역전 결승 2점 홈런
- 사이클링 히트: 1990년 7월 7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11차전(하마마츠 구장), 역대 42번째[4]
- 통산 100홈런: 1996년 4월 16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3차전(기타큐슈 시민 구장), 5회말에 니시자키 유키히로로부터 솔로 홈런, 역대 185번째[4]
- 통산 1000경기 출장: 1996년 7월 27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17차전(그린 스타디움 고베), 8회초에 보시 히로시의 대타로 출장, 역대 333번째[4]
통산 성적은 110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35, 안타 715개, 홈런 105개, 타점 419개를 기록했다.
5. 3. 기타
6. 상세 정보
(내용 없음)
6. 1. 연도별 타격 성적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자 | 희생번 | 희생플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1985년 | 난카이·다이에 | 8 | 11 | 9 | 1 | 1 | 0 | 0 | 1 | 4 | 2 | 0 | 0 | 1 | 0 | 1 | 0 | 0 | 3 | 0 | .111 | .200 | .444 | .644 |
1986년 | 1 | 3 | 3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000 | .000 | |
1987년 | 26 | 48 | 41 | 2 | 10 | 6 | 0 | 0 | 16 | 3 | 0 | 0 | 1 | 0 | 6 | 0 | 0 | 8 | 0 | .244 | .340 | .390 | .731 | |
1988년 | 108 | 329 | 278 | 27 | 56 | 9 | 0 | 7 | 86 | 28 | 1 | 2 | 9 | 1 | 38 | 0 | 3 | 71 | 5 | .201 | .303 | .309 | .612 | |
1989년 | 77 | 284 | 237 | 30 | 60 | 12 | 0 | 13 | 111 | 50 | 1 | 2 | 10 | 0 | 37 | 0 | 0 | 62 | 6 | .253 | .354 | .468 | .822 | |
1990년 | 112 | 388 | 332 | 26 | 70 | 16 | 3 | 12 | 128 | 61 | 2 | 1 | 15 | 1 | 37 | 1 | 3 | 84 | 11 | .211 | .295 | .386 | .680 | |
1991년 | 101 | 299 | 256 | 29 | 68 | 13 | 1 | 11 | 116 | 30 | 1 | 0 | 1 | 0 | 41 | 1 | 1 | 46 | 4 | .266 | .369 | .453 | .822 | |
1992년 | 130 | 454 | 368 | 48 | 93 | 15 | 2 | 20 | 172 | 56 | 2 | 0 | 8 | 2 | 76 | 0 | 0 | 89 | 14 | .253 | .379 | .467 | .846 | |
1993년 | 129 | 512 | 456 | 44 | 109 | 16 | 3 | 13 | 170 | 53 | 1 | 3 | 2 | 0 | 53 | 4 | 1 | 87 | 16 | .239 | .320 | .373 | .692 | |
1994년 | 121 | 398 | 333 | 30 | 81 | 15 | 0 | 11 | 129 | 52 | 2 | 2 | 1 | 3 | 59 | 1 | 2 | 72 | 3 | .243 | .358 | .387 | .745 | |
1995년 | 119 | 456 | 383 | 36 | 101 | 17 | 1 | 11 | 153 | 58 | 0 | 4 | 2 | 3 | 68 | 2 | 0 | 88 | 10 | .264 | .372 | .399 | .772 | |
1996년 | 101 | 309 | 266 | 24 | 56 | 11 | 0 | 6 | 85 | 23 | 0 | 3 | 3 | 3 | 36 | 1 | 1 | 63 | 9 | .211 | .304 | .320 | .623 | |
1997년 | 28 | 39 | 31 | 2 | 2 | 0 | 0 | 0 | 2 | 0 | 0 | 1 | 2 | 0 | 6 | 0 | 0 | 7 | 1 | .065 | .216 | .065 | .281 | |
1998년 | 오릭스 | 42 | 52 | 46 | 3 | 8 | 2 | 0 | 0 | 10 | 3 | 0 | 0 | 0 | 0 | 6 | 0 | 0 | 17 | 3 | .174 | .269 | .217 | .487 |
통산 : 14년 | 1103 | 3582 | 3039 | 302 | 715 | 132 | 10 | 105 | 1182 | 419 | 10 | 18 | 55 | 13 | 464 | 10 | 11 | 697 | 82 | .235 | .337 | .389 | .726 |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 난카이(난카이 호크스)는 1989년에 다이에(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구단명을 변경함.
6. 2. 연도별 감독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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